요즘 아이들이 '이부자리'를 모른다는 말, 들어봤는가. 별자리냐고 묻는 학생들이 실제로 있다는 얘기다.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논쟁이 다시 불붙은 건 단순히 교육 정책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 문해력 저하가 수치로 확인되기 시작하면서, 그 원인과 해법을 두고 학부모·교육계·정부가 각자 다른 답을 내놓고 있다.
교원 92%가 "학생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말한 이유
한국 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교원 5,848명을 대상으로 학생 문해력 실태를 조사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응답자의 92%가 학생들의 문해력이 과거보다 떨어졌다고 답했다. 선생님들이 실제로 학생들이 어려워한다고 꼽은 단어들을 보면 감이 온다. 이부자리, 두발 자유화, 족보, 존귀, 중식 안내, 사기 저하. 이 중에서 '이부자리'를 모르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요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침대에서 잔다. 이불 위에서 잔 경험 자체가 없으니 그 단어를 접할 이유가 없다. '두발 자유화'를 모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강제로 머리를 짧게 밀어야 했고, 머리 길이에 대한 자유를 요구하는 운동이 굉장한 이슈였다. 하지만 그런 제도가 사라진 지 오래된 아이들에게 '두발'이 '두 발(다리)'이 아닌 '머리카락'을 뜻한다는 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맥락이다. '족보'를 들으면 족발 보쌈 세트를 떠올리는 학생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집에 족보가 없고 그 단어를 들어본 경험 자체가 없다면 발음에서 연상되는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핵심은 이렇다. 아이들이 멍청해진 게 아니다. 접한 적이 없는 단어를 모르는 것이다.
한자 병기 논란, 왜 지금 다시 불거졌나
문해력 문제가 수치로 확인되자 자연스럽게 등장한 해법 중 하나가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다. 한자를 없애니까 한자어 뜻을 모르는 거 아니냐는 논리다. 병기(倂記)란 한글 단어 옆에 괄호를 열고 한자를 함께 표기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문해력(文解力)'처럼 쓰는 것이다. 이미 1999년부터 주민등록증 같은 공공 문서에서는 한자 병기가 적용되고 있다. 지금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보면 이름 옆에 한자가 함께 적혀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교과서에서 한자가 사라진 건 1969년 이후다. 지금 논의되는 건 무려 57년 만의 부활이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초등학교 한자 수업 의무화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82%까지 나왔다.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단어를 너무 모른다는 체감이 쌓이면서 여론이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업무 보고 자리에서도 이 주제가 등장했다. 한국고전번역원 원장이 "아이들이 한자를 배우지 않아서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건의했고, 국가교육위원회는 문해력 특별위원회를 발족해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를 포함한 교육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다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현재 방향은 "한글을 기본 원칙으로 하되, 뜻 구분이 어려운 단어는 한글 표기 옆에 한자를 병기한다"는 수준이다.
예전에도 추진했다가 백지화된 적이 있다, 그때 왜 막혔나
사실 이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10년 전에도 교육부가 교과서 한자 병기 확대를 검토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어떻게 됐을까. 결론은 백지화였다. 반대 여론이 거셌다. 한글 단체를 중심으로 상복 차림에 영정을 든 채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항의하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초등학교 교과서가 바뀔 것을 우려한 반대였다. 반대 측의 논리는 명확했다. "한국어는 한글로 표기해야 한다. 한자 병기는 한글 전용 원칙에 역행한다." 반면 찬성 측은 "한자를 모르니까 단어의 뜻을 이해 못 하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맞섰다. 지금도 이 두 입장은 평행선이다. 달라진 건 문해력 저하가 통계로 확인됐다는 것, 그리고 찬성 여론이 훨씬 높아졌다는 점이다.
한자 종주국 중국은 문해력 문제가 없을까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한자가 본래 자기 나라 글자인 중국은 이런 논란이 없을까? 당연히 있다. 그것도 꽤 심각하게. 중국인들 사이에서 최근 급격히 번지고 있는 현상이 바로 '한자 기억상실증'이다. 문맹이 된 게 아니다. 읽는 건 되는데, 막상 손으로 쓰려고 하면 멈칫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 청년 2,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98%가 한자 쓰는 법을 잊어버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여러 매체의 비공식 설문에서도 약 80%가 일상에서 한자를 잊어버린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이유는 단순하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채팅할 때 한자를 직접 손으로 쓰지 않는다. 영어 알파벳으로 발음을 입력하면 해당 한자가 자동으로 추천되고, 그것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손으로 한자를 쓸 일이 아예 없어진 것이다. 베이징 사범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조차 "컴퓨터로 필기를 너무 자주 하다 보니 한자 쓰는 법을 잊는 경우가 있다"고 고백한 인터뷰가 있다. 단어를 알고, 뜻도 알고, 발음도 알지만 손으로 쓰라고 하면 획순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5만 개가 넘는 한자가 있다. 일반 사용에 2만 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6,000~8,000개를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그 많은 글자를 매일 손으로 쓰지 않으면 당연히 잊히기 시작한다. 그래서 중국은 이미 2011년부터 초등학생들에게 매주 한 시간씩 손으로 글씨 쓰기(서예) 수업을 의무화했다. TV에서 한자 받아쓰기 대회를 개최하고, 음식 주문을 손으로 받는 식당에서 직원을 고용할 때 한자 쓰기 테스트를 보는 경우도 생겼다. 심지어 알아보기 어렵게 쓴 문서를 해석해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일본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어는 히라가나, 가타카나, 한자를 혼용하는데, 입력 방식은 중국과 비슷하다. 히라가나로 발음을 입력하면 한자가 자동으로 변환돼 뜨는 방식이다. 손으로 쓰라 하면 한자를 기억할 수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거의 절반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읽는 건 되는데 쓰는 건 어렵다는 현상이 중국과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 전체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스마트폰 이후 글씨를 손으로 쓸 일이 없어지면서, 눈으로는 읽지만 손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자 병기가 해답이 아닐 수도 있는 이유
문해력 저하의 원인을 한자 교육 부재 한 가지로 보기는 어렵다. 자막에서도 언급됐듯이, 요즘 아이들이 '어그로', '탱킹' 같은 게임 용어는 바로 안다. 시대에 따라 익숙한 단어가 달라지는 것이다. 신문을 읽지 않는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스마트폰과 영상 콘텐츠 중심의 생활에서 긴 글을 읽는 기회 자체가 줄었다. 한자를 모르는 것보다, 긴 문장을 읽고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 문해력 저하의 더 본질적인 문제일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사례는 이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자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들도 스마트폰 이후 문해력과 쓰기 능력이 함께 떨어지고 있다. 한자 교육 여부가 아니라 '읽고 쓰는 습관'의 문제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은 중국어, 일본어에 비해 훨씬 배우기 쉽고 표기하기 간편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유리함이 있다. 세종대왕이 만든 문자 덕분에 한국은 한자 기억상실증으로 가장 심각하게 타격받는 나라에서 비켜나 있다. 교과서 한자 병기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중요한 건 병기 여부 그 자체보다, 아이들이 다시 읽고 쓰는 습관을 되찾을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