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주가가 고점 대비 30~40% 빠졌다. 삼성전자는 분기 영업이익 90조 원에 육박하는 실적을 냈는데도 주가는 올라가기는커녕 떨어졌다. 이걸 보면서 "업황이 꺾인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많다. 그런데 삼성전자 공정개발 연구원 출신으로 반도체 업계에서 20년을 보낸 전문가는 단호하게 말한다. "반도체 업계는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먼저 수급 측면에서 봐야 한다. 현재 메모리 3사(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와 중국까지 포함한 4사에서 웨이퍼 생산량이 늘어날 가능성은 "확률 0%"다. 용인 하이닉스 Y1 팹 라인이 내년 2월에 완공되더라도, 장비 셋업 6개월에 웨이퍼 생산까지 최소 3개월이 걸린다. 계산하면 실제 웨이퍼가 시장에 나오는 건 내년 10월 이후다. 그것도 기존 웨이퍼 총 생산량의 약 10만 장 수준의 점진적 증가일 뿐이다.
지금 반도체 공장들은 이미 100% 풀 가동 중이다. ASML 같은 핵심 장비를 지금 전화해서 주문하면 1년 반을 기다려야 한다. 국내 장비사도 6개월 대기가 기본이다. 장비 자체가 부족한데 웨이퍼 생산이 갑자기 늘어날 방법이 없다.
LTA(Long Term Agreement)가 처음 나왔을 때는 "반도체 사이클 종료"의 신호로 호재라고 봤다. 근데 최근에는 "LTA 때문에 현물 가격 상승분을 다 못 가져가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해석도 나왔다. 이 부분을 정확히 짚어야 한다.
LTA 계약의 핵심은 공급 물량(퀀터티)을 고정한 것이지, 가격을 고정한 게 아니다. 가격은 유동적으로 올라가게 설계되어 있다. 현물 가격처럼 10배씩 급등하지는 않지만, 가격 상승분의 상당 부분은 반영된다. 실제로 현재 반도체 메모리 3사의 LTA 매출 비중은 약 40%에 달하고, HBM이 30%를 차지한다. 이 70%는 이미 3년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생긴다. 삼성전자는 LTA 없이도 시장을 지배할 만큼 물량이 크다. 반면 하이닉스는 HBM 가격 협상에서 1분기에 다소 손해를 봤고, 그게 실적 격차로 이어졌다. 실제로 지난해 4분기에는 삼성전자 20.1조 원 대 하이닉스 18조 원으로 거의 같은 수준이었던 영업이익이, 올해 1분기에는 57.2조 원 대 38조 원으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그렇다면 왜 주가는 이렇게 빠졌을까. 5월 27일 레버리지 ETF 출시 이후 삼성전자·하이닉스의 일별 변동폭이 기존 3~4.5%에서 6~7%로 60% 이상 커졌다. 주가 변동성이 갑자기 뛴 것이다. 여기에 JP모건,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기관의 반도체 부정적 보고서, 메타와 애플의 메모리 가격 불만 발언, IBM의 실적 부진이 겹치면서 시장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결정적인 것은 레버리지 ETF 수급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하락 구간에서 공포에 매도를 쏟아내면서 낙폭이 과도하게 커졌다. 실제로 반도체 업계에서 새롭게 나쁜 뉴스가 나온 게 아니라, 시장의 감정이 과잉 반응한 것이다. 전문가는 이 상황을 두고 "반도체 산업보다 시장이 무섭다"고 표현했다.
지금은 AI 인프라 투자의 초기 국면이다. HBM은 이미 수주 산업이 됐고, 엔비디아 GPU 원가의 30%가 HBM이다. GPU 하나당 6천만~1억 원인데, 여기에 들어가는 HBM을 빼거나 성능을 낮추면 데이터 처리 속도 자체가 망가진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품이 된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AI 토큰 사용량은 현재 한 달에 5경 토큰 수준인데 2030년까지 24배 증가가 예상된다. 토큰 수 증가는 100% 반도체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여기에 에이전틱 AI(AI가 스스로 판단하고 작업을 처리하는 단계)가 본격화되면 DRAM, NAND 모든 메모리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다. 삼성전자도 내부 시스템에 오픈AI 코덱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엔터프라이즈 LLM 시장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는 증거다.
CXMT의 디램 점유율이 1년 만에 3%에서 7.6%로 올라온 건 사실이다. 속도가 생각보다 빠른 것도 맞다. 그러나 기술 격차는 최소 3년이다. 이게 단순한 숫자 차이가 아니다.
현재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양산 중인 10나노 6세대 디램 웨이퍼 한 장에서 나오는 다이 개수는 약 1,500개다. 중국은 두 세대 뒤처져 있다. 같은 웨이퍼 한 장에서 나오는 다이 개수가 절반도 안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수율(제대로 작동하는 제품 비율)을 50% 이상 올리는 것은 천재 한 명이 해결하는 게 아니다. 수천 명의 엔지니어가 20년 이상 축적한 공정 노하우가 필요하다. 중국이 이 격차를 쉽게 좁힐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애플이나 메타가 CXMT를 언급하는 것은 협상 카드에 가깝다. 메모리 쇼티지가 심해서 기술력이 한참 뒤처진 중국 제품이라도 써보겠다는 궁여지책이지, 실제 구조적 대안이 아니다.
국내 소부장 기업 중 글로벌 1등 기업은 없다. 이 점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장비 측면에서는 ASML,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 램리서치 같은 글로벌 탑5 장비사가 사실상 독점이고, 이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50%를 넘는다. 국내 장비사 평균은 15% 수준이다.
그러나 시기 측면에서는 기회가 있다. 내년 2월 라인 건설 완료 이후, 장비 셋업 시기에 맞춰 장비 관련 발주가 이미 나오기 시작했다. 웨이퍼 생산이 본격화되는 내년 6~8월부터는 소재와 부품 수요가 급격히 올라간다. 세정 기업 등 리커링 수요가 강한 부품·소재 기업이 장비주보다 더 안정적인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 판단이다.
이달 말 예정된 빅테크와 하이퍼스케일러 실적 발표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캐팩스(자본지출) 수치다. AI 인프라 투자가 계획대로 유지되는지, 아니면 줄어드는지가 반도체 수요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것 외에는 현재 나오는 부정적 노이즈 대부분이 실제 업황 변화가 아니라 시장 감정의 반응이다.
전문가 본인도 "돈이 없어서 레버리지는 없지만, 있으면 하나씩 더 사겠다"고 말했다. 업황만 보자면 지금은 기다릴 구간이라는 뜻이다. 물론 각자의 포트폴리오와 투자 스타일은 다르고, 어떤 선택도 본인 책임이다. 다만 확인해야 할 기준만큼은 분명하다. 업황이 바뀌었느냐, 아니면 시장 감정이 과반응한 것이냐. 지금까지의 팩트는 후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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