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조별리그 탈락을 확정한 순간,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나였을 것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슈퍼컴퓨터가 32강 진출 확률을 90%로 예측했고, 9가지 경우의 수 중 3개만 맞추면 됐다. 그런데 결과는 단 하나만 맞았다. 아홉 개 중에 하나. 수능을 봐도 이 정도면 망한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이번 대회는 48개국이 참가하는 확장된 월드컵이었다. 예전이라면 32강 자체가 벽이었겠지만, 이번에는 조별리그를 통과해 32강 안에만 들면 됐다. 팬들이 "경우의 수 계산"에 몰두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2, 3주 동안 전 국민이 빙고판을 들고 남의 나라 경기까지 새벽에 찾아보게 만든 월드컵이었다.
그런데 역배가 쏟아졌다. 70% 이상 승률을 가진 팀이 비기거나 지는 일이 연달아 터졌고, 한국이 올라가기 위해 필요했던 조건들이 하나씩 X로 바뀌었다. 말도 안 되는 확률을 뚫고 탈락한 것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확률을 뚫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경기 자체도 팬들의 답답함을 키웠다. 왜 공격을 하지 않는가. 40년 축구를 봐온 시청자들조차 "공격하다가 역습에 골 먹는 것도 아니고, 왜 수비만 하냐"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조 2위로 올라갔을 때 만나는 팀이 유리해서 의도적으로 수비를 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탈락 이후 벌어진 일들이 오히려 더 황당했다. 대표팀은 별도 행사 없이 조용히 몇 명씩 나눠서 귀국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공항에서 엿을 건넨 사진이 논란이 됐던 기억을 피하려 한 것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축구 협회는 그런 거 아니라고 공식 입장을 냈다.
감독은 사퇴서를 내고 급하게 출국했다. 축구 협회는 사과문을 올렸는데, 긴 문장 어디에도 책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다시 준비하고 정진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정작 협회장은 월드컵 직전에 이미 사퇴를 예고했고, 대회가 끝나자 공식적으로 공석이 됐다.
협회장도 없고, 감독도 미국으로 출국한 상황에서 입장을 낸 건 선수였다. 한 선수가 장문의 글을 올려 "우리만 보기에 힘들었던 게 아니라, 선수들도 힘들었던 경기였다"고 밝혔다. 지도자단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선수가 팬들에게 사과하는 구조가 이번 한국 축구의 현실이었다.
축구 협회는 현재 60일 이내에 새 회장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고, 차기 감독 선임 절차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책임질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구조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 대회에 아시아에서는 역대 최대인 9개국이 참가했다. 48개국 체제로 아시아 출전국이 기존 6개국에서 9개국으로 늘었다. 더 많이 나왔으니 더 많이 통과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였다.
9개국 중 조별리그를 통과한 건 단 2개국, 일본과 호주였다. 대한민국, 이란, 사우디, 카타르, 이라크, 우즈베키스탄, 요르단 7개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32강에 올라간 일본과 호주도 결국 32강전에서 탈락하면서, 아시아 9개국 전원이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대참사가 완성됐다.
비교해보면 충격이 더 크다. 아프리카는 10개국이 출전해 9개국이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90% 통과율을 기록했다. 인구 52만 명의 섬나라 카보베르데가 조별리그를 통과했고, 심지어 아르헨티나와 연장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다. 40세 골키퍼의 선방쇼가 이번 대회 최고의 경기로 꼽힐 정도였다. 아시아는 반대로 최악의 통과율을 기록했다.
외신도 가만있지 않았다. "아시아 팀들의 부진한 성적이 대단히 유감이고, 아시아가 축구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이 4강까지 가면서 "아시아에서 우승 팀이 나올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지금은 그 얘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낯설다.
아시아 축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중국과 인도는 왜 축구를 못 하나. 두 나라의 인구를 합치면 약 28억 명이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다.
인도의 경우는 크리켓이라는 압도적인 국민 스포츠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인도에서 크리켓 스타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억 7천만 명이다. 발리우드 배우와 크리켓 선수만이 전통적인 신분 인식을 뚫고 사회적 우상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축구는 그 급에 아직 못 올라갔다는 것이다.
중국은 더 직접적인 문제가 있었다. 중국 축구 협회가 반부패 운동을 선언하고 조사한 결과, 전 국가대표 감독을 포함한 73명이 징계를 받았다. 뇌물 수수와 승부 조작으로 전 국대 감독이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중국 리그 참가 16개 클럽 중 11개 클럽이 징계를 받았고, 올해 시즌은 9개 팀이 마이너스 승점으로 시작했다. 3시즌 연속 우승 팀인 상하이 포트도 승부 조작, 도박, 뇌물 수수로 징계 대상에 포함됐다.
지도자가 관심을 가질수록 예산이 배분되고, 그걸 노리는 부패가 늘어난다는 "반비 공식"이 중국 축구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었던 셈이다. 축구 팬만 1억 명이라는 나라에서 11명을 제대로 못 뽑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칼을 뺐다. 문화체육부장관과 박지성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K축구 혁신위가 출범했다. "대한민국 축구의 앞으로 30년이 여기에 달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한국은 K리그 1부터 K7까지 축구 구조가 촘촘하다. K리그 1이 12개 팀, K리그 2가 17개 팀, K3·K4도 각각 14개·13개 팀이 있다. 동호회 축구팀까지 포함하면 K7 이하로 천 개가 넘는다. 이 정도 인프라를 갖춘 나라가 이런 결과를 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구조적 문제를 시사한다.
일본은 이미 2050년 이전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100년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브라질에 2대 1로 지긴 했지만, 전반전에 선제골을 넣으며 충분히 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 내에서는 유니폼 판매량이 전 대회 대비 9배 급증했다는 데이터가 이를 증명한다.
반면 한국은 지금 협회장도 없고, 감독도 없는 상태에서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 빠른 선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같은 구조가 반복되지 않을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책임의 공백이 이번처럼 선수에게까지 내려와서는 안 된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월드컵 4강 기본이라 불리던 전차군단이 32강에서 탈락하며 감독 교체 논란이 불거졌고, 결국 120억 원의 위약금을 지급하며 계약을 종료했다. 탈락 이틀 만에 축구 협회 비리 의혹 수사도 시작됐다. 강국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동시에 더 늦기 전에 바꿔야 한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아시아 호랑이가 누군지 보여줄 다음 기회는 또 찾아온다. 그때는 경우의 수가 아니라 경기력으로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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