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을 끝냈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합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누가 이긴 건지 헷갈린다. 미국도 이겼다고 하고, 이란도 이겼다고 한다. 승전국이 패전국의 재건 비용을 지원하고, 자신이 부과했던 제재를 스스로 전면 해제한다는 합의가 어떻게 '완전한 승리'가 될 수 있는지 — 그 내용을 지금부터 차례로 짚어본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프린터를 찾아 헤매다 — 서명이 이뤄진 배경
트럼프 대통령은 생일 당일인 6월 14일 이란과의 협상 완료를 전격 발표했다. 그리고 G7 참석을 위해 프랑스로 건너간 직후, 베르사유 궁전에서 만찬 도중 합의 소식을 전달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서명 의사를 밝혔다. 문제는 베르사유 궁전에는 프린터가 없었다는 것이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프랑스 외무장관이 궁전 전체를 뒤져 프린터를 찾아내, 현장에서 문서를 출력해 서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원래 일정은 루비오 장관과 밴스 부통령이 스위스로 이동해 서명하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적 재앙을 피하기 위해 이틀이라도 빨리 서명해야 했다"고 직접 밝혔을 만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컸다는 뜻이다.
MOU 핵심 조건 — 미국은 무엇을 약속했나
이번 양해각서(MOU)는 14~15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내용을 순서대로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서명 즉시 모든 전선에서 전쟁을 즉각적·영구적으로 종료한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충돌 중인 레바논 전선도 명시적으로 포함됐다. 두 번째, 양국은 서로의 주권과 영토 보존을 존중하고 내정 불간섭 원칙을 따른다. 이란 정권 교체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세 번째, MOU 서명 이후 60일간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을 진행한다. 이 기간은 상호 합의에 따라 연장될 수 있다. 네 번째, 미국은 MOU 체결 즉시 해상 봉쇄를 해제하고 병력을 즉각 철수한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상선 이동을 전쟁 전 수준으로 즉시 복구한다. 다섯 번째, 이란 경제 재건을 위해 미국은 역내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최소 3천억 달러(약 450조 원)의 재정 지원을 확보할 것을 약속한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단 1달러도 내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과 일부 미국 기업들이 투자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전해진다. 여섯 번째, 미국은 이란에 부과된 모든 제재를 해제할 것을 약속한다. UN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IAEA 제재를 포함한 모든 일방적 제재가 해제 대상이다. 이란의 원유 수출도 즉시 허용된다. 일곱 번째, 이란의 동결 자산 전액을 해제한다. 이란이 결정하는 방식대로 사용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이란은 핵무기를 절대 생산하지 않겠다고 강조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장거리 탄도미사일, 드론, 군사력 감축에 관한 조항은 이번 MOU에 들어가지 않았다.
호르무즈 통행료 논란 — 미국이 '부과할 수 있다'는 말의 진짜 의미
이번 합의에서 가장 묘한 조항이 있다. 상업용 선박의 안전한 통행에 대해 "60일간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추가된 것이다.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이다. 60일 이후에는 통행료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실제로 이란은 60일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부인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부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통행료도 부과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발언이 핵심이다. 이란이 통행료를 부과하겠다고 나오면, 미국이 먼저 부과하겠다는 카드를 꺼낸 것이다.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미국이 통행료를 받겠다 — 즉, 합의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건 이란이라는 역발상 압박 전술이다. 트럼프식 협상 방식이 이 조항 하나에 그대로 담겨 있다.
미국이 이긴 건가, 이란이 이긴 건가 — 양측이 모두 승리를 선언하는 이유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합의는 이란의 무조건 항복"이라고 규정했다. "더 강하게 폭격할 수 있었지만 세계 경제와 평화를 위해 참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반면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트럼프가 너무 절박해서 먼저 협상을 원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란 대통령도 "이번 MOU는 역사적 문서이자 강력한 이란의 메시지"라고 자축했다. 이란 입장에서의 논리는 이렇다. 세계 최강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고도 정권이 유지됐다. 무조건적 항복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재는 전면 해제됐고, 동결 자산도 돌려받게 됐으며, 3천억 달러 재건 지원까지 얻어냈다는 것이다. 미국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핵협정의 대가로 16~17억 달러 상당의 동결 자산을 해제해 줬을 때 "미친 짓"이라고 맹비난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는 그 수십 배 규모의 제재 해제와 자산 해제를 합의했다는 아이러니다.
이스라엘 변수 — 합의의 최대 걸림돌은 레바논
현재 이번 합의의 최대 변수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MOU에 레바논 전선 종전이 명시됐음에도 불구하고,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IDF는 "이스라엘 북부 주민의 방어를 위해 작전을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이란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폭격이 계속된다면 호르무즈 해협을 재봉쇄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벤스 부통령은 "이미 많은 선박이 해협을 통과해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란은 여전히 폐쇄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트럼프가 이스라엘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라 믿는가"라는 여론조사에 71%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이란 정권 교체 실패, 핵 프로그램 완전 파괴 실패, 탄도미사일 감축 미포함 등 전쟁 목표 대부분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종전 합의가 이뤄졌다는 이스라엘 국내 불만이 상당하다. 이스라엘은 10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현재 여론 상황에서 더 강경하게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네타냐후의 재선 가능성은 나에게 달렸다"는 취지의 기사를 SNS에 공유하며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60일 안에 합의가 안 되면 어떻게 되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했다. "그래도 괜찮다. 다시 폭격하면 되니까." 결국 지금의 MOU는 완전한 합의가 아니라 60일짜리 유예 기간이다. 이 기간 안에 핵 문제, 미사일 문제, 호르무즈 통행료 문제, 레바논 전선 처리 방식 등 산적한 현안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합의의 실제 무게가 결정된다. 미국이 이번 전쟁에서 실질적으로 얻어낸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이란 비핵화는 오바마 합의에도 있던 내용이고, 호르무즈 정상화는 전쟁 전으로의 복귀일 뿐이다. 이란의 정권은 바뀌지 않았고, 군사력 감축도 없었다. 반면 이란은 제재 해제, 동결 자산 회수, 재건 지원이라는 세 가지를 얻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가 이겼다"고 두 나라가 동시에 말하는 전쟁 — 60일 후 최종 합의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이 전쟁의 실제 결말을 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