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을 들으면 대부분 중세 암흑기, 교회의 광기, 무고한 여성의 처형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 상식의 거의 모든 부분이 잘못됐다.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김학철 교수는 마녀사냥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은 체계적인 오해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오해를 바로잡는 순간, 이야기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사회로 직결된다.
마녀사냥은 중세가 아니라 근세에 일어난 일이다
역사학자들이 규정하는 중세는 5세기에서 15세기까지, 약 1천 년의 시간이다. 그런데 체계적인 마녀재판이 시작된 시점은 1428년, 스위스의 한 마을에서다. 중세가 끝나갈 무렵에야 겨우 시작된 것이다. 이후 마녀사냥이 절정에 달한 시기는 1560년에서 1630년 사이다. 갈릴레오, 데카르트, 케플러, 홉스가 활동한 과학혁명의 시대와 정확히 겹친다. 마지막으로 유럽에서 마녀로 처형된 사람이 기록된 해는 1811년, 마지막 공식 마녀재판은 1782년이다. 즉, 마녀사냥은 중세 암흑기의 산물이 아니라 르네상스 이후, 종교개혁 이후, 인쇄술이 보급된 이후에 폭발적으로 번진 근세의 현상이다. "중세 시대 마녀사냥"이라는 표현은 역사적으로 틀렸다. 거북선이 고려시대에 발명됐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오류다.
마녀는 여성만이 아니었다 — 첫 피해자는 남성 농민이었다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마녀의 이미지는 고깔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탄 늙은 여성이다. 그러나 마녀재판이 최초로 시작된 1428년 스위스의 사례에서 처음 지목된 다수는 남성 농민이었다. 아이슬랜드에서는 1625년부터 1685년 사이에 마녀로 지목되어 처형된 사람들 중 한 명만이 여성이었다. 핀란드, 에스토니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도 남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례가 확인된다. 그렇다면 왜 여성 피해자가 더 많은 지역도 있었는가. 김 교수는 그 이유를 구조적으로 설명한다. 산파, 약초 지식, 아이 돌봄처럼 여성이 주로 담당하던 역할은 공동체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죽음과 자주 연결됐다. 소빙하기라는 기후 재앙이 겹치면서 가난해진 사람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이웃집을 찾아가다 거절당하면, 그 이후 마을에 생긴 불행은 그 노파의 저주로 해석됐다. 마녀로 지목된 사람의 공통점은 여성이 아니었다. 변호해 줄 사람이 없는 존재, 옹호해 줄 사람이 없는 사람이었다.
마녀사냥이 그렇게 오래 지속된 진짜 이유 — 수익 구조
마녀사냥이 퍼지는 데는 세 가지 조건이 결합됐다. 경제학자 피터 리슨과 제이컵 러스는 이코노미카 저널에서 마녀사냥의 절정과 종교 개혁 격전지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분석을 발표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 경쟁하던 지역에서 마녀사냥이 가장 많이 일어났다. "어느 종교가 마녀를 더 잘 찾아낼 수 있느냐"는 일종의 비가격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 경제학적 설명 하나로 모든 것을 환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마녀사냥이 폭발한 배경에는 종교, 기후, 경제, 사법 시스템, 개인의 탐욕과 심리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여기서 핵심적인 메커니즘이 등장한다. 마녀 한 명이 발굴되면 수익 사업이 시작된다. 피해자의 재산은 몰수됐고, 고문관과 신문관은 수당을 받았다. 자백을 받아내고 나면 반드시 "또 누가 있느냐"는 질문이 뒤따랐다. 마녀는 집회를 열기 때문에 혼자일 수 없다는 논리로, 새로운 피해자가 자동으로 생산되는 구조였다. 마녀를 찾아내는 게 아니라 마녀를 만들어 내고 있다. 17세기 예수회 사제 프리드리히 슈페는 1631년 익명으로 출판한 경고형사론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잡아 충분히 오래 고문하면 반드시 마녀라는 자백을 얻어낼 것이다."
900만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마녀사냥으로 900만 명이 희생됐다는 숫자는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그런데 이것은 허구다. 18세기 말 독일의 학자 호이크트가 자기 고향의 16세기 후반 약 30년치 처형 기록을 유럽 전체 11세기 분량으로 단순 환산한 숫자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1893년 미국의 페미니스트 마틸다 조슬린 게이지가 저서에서 이 수치를 채택하며 대중화됐다. 20세기 후반 학자들이 실제 기록을 추적한 결과, 전 유럽에서 2~3세기에 걸쳐 기소된 인원은 8만에서 10만 명 수준이며 처형된 인원은 4만에서 6만 명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것도 엄청난 비극이다. 그러나 900만 명이라는 숫자는 처음부터 무책임한 통계적 조작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마녀사냥이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김 교수가 마녀사냥을 꺼낸 이유는 역사 강의가 아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다. 마녀사냥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도 마녀로 몰렸다. 이 시스템의 가장 위험한 특징은 자기 증식이다. 한 명이 지목되면 다음 피해자를 자동으로 생산한다. 그리고 이것은 수익이 된다. 지금은 어떤가. 굿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마녀사냥의 확산을 도왔다면, SNS와 유튜브 알고리즘은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하다.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열 배 빠르게 퍼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한 사람을 마녀로 만드는 것이 수익 사업이 되는 구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늘 위기 상태다. 경제가 좋아도 위기, 나빠도 위기다. 위기 담론이 일반화된 사회에서는 편도체가 항상 활성화된다. 판단이 중지되고, 적을 찾기 시작한다. 복잡한 구조의 문제를 단 한 명의 마녀에게 귀속시키는 환원주의적 사고가 자동으로 발동한다. 16~18세기 마녀사냥의 구조와 틀, 심리에서 지금 우리가 그렇게 크게 벗어나 있느냐는 질문은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다. 마녀사냥이 중세의 야만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같은 구조 안에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막이다.